지난봄 강원지역에서는 연탄을 이용한 '연쇄 동반자살'이 잇따르면서 전국이 충격에 빠졌다.
인터넷 자살 카페를 통해 급속도로 번진 이른바 '자살 바이러스'는 지난 4월 한 달간 5건의 동반자살로 남녀 12명의 목숨을 앗아갔다.
민박이나 팬션 등지에서 연탄불을 이용한 연쇄 동반자살자 절반 이상이 10대와 20대 등 청년층이었고, 4~5명이 무리를 이뤄 동반자살을 결행했다는 점에서 사회적인 충격은 더했다.
당시 도내 민박.팬션업계와 경찰은 또 언제 발생할지 모를 동반자살에 전전긍긍, '초비상'이 걸렸다.
일주일이 멀다 하고 발생한 연쇄 동반자살의 진원지가 인터넷 카페로 밝혀지면서 파장은 일파만파로 확산됐고, 카페 개설.운영자는 자살방조 혐의로 경찰에 구속됐지만 여진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고 있다.
◇자살 바이러스 '광풍' = 지난 4월 8일 오후께 강원 정선군 북방면 한 민박집에서 남성 2명과 여성 2명이 연탄가스에 질식해 숨진 채 발견됐다.
당시 객실 바닥에는 '강요가 아닌 자신의 의지로 생을 마감한다'는 내용의 메모와 함께 화덕 2개와 타다 남은 연탄 6장 등이 발견됐다.
숨진 남녀 4명은 이불을 덮은 채 나란히 누운 채 발견됐고, 객실 내 출입문과 창문 틈은 비닐테이프로 밀폐돼 연탄가스 냄새가 진동했다.
연쇄 동반자살의 서곡이 된 이 사건 이후 횡성과 인제 등 도내에서만 같은 달 8일부터 23일까지 보름여 동안 5차례에 걸쳐 남녀 21명이 동반자살을 기도해 이 중 12명이 숨졌다.
이들은 대부분 사업실패와 불안한 미래, 우울증, 신병 등을 비관한 끝에 극단적인 방법으로 여러 명이 함께 하는 동반자살을 선택했고 지난해 숨진 유명 탤런트의 자살방법을 모방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.
◇동반자살 부추기는 '자살카페' = 경찰 수사결과 도내 연쇄 동반자살이 특정 인터넷 자살카페와 연관된 것으로 드러나 또 한 번 충격을 안겨줬다.
경찰은 인터넷 자살카페를 통해 알게 된 회원 등에게 집단자살을 부추기거나 자살방법을 게시한 'suicide04' 카페 개설.운영자 정모(21) 씨를 자살방조 혐의로 구속했다.
이 카페에서 알게 된 일부 접속자들은 부산 등지에서도 동반자살을 기도하는 등 인터넷을 통한 자살 바이러스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.
카페 개설자는 접속자들에게 쪽지를 보내는 수법으로 '염세' 등 비슷한 처지의 회원을 모집해 동반자살을 부추기거나 자살 방법을 게시한 것으로 드러났다.
당시 'sucide04' 카페의 회원은 20명이었고 이 중 일부는 동반자살을 기도했거나 숨졌다.
특히 이 카페를 통해 알게 된 동반자살 기도자들은 인터넷 초청 메일이나 문자 메시지 등을 통해 또 다른 동반자살자들과 연락을 취한 뒤 자살 실행 직전에 만났으며, 일부는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고 카페를 탈퇴했다.
◇왜 강원도인가 = 동반자살이 집중된 '잔인한 4월' 이후에도 연쇄 동반자살은 전국으로 번져나갔다.
올 들어 최근까지 도내에서만 22명이 동반자살한 것으로 집계된 가운데 대부분이 외지인인 것으로 파악됐다. 이 때문에 강원도가 '동반자살의 종착역'이라는 오명을 얻기도 했다.
한국자살예방협회 사이버상담실 상담위원으로 활동하는 나사렛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김정진 교수는 "실제 자살사이트 등에서 동반자살의 장소로 강원도를 선택하는 사례를 빈번히 접할 수 있다"고 말했다.
김 교수는 "산악지대인데다가 인구밀도가 낮아 쉽게 발견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강원도를 선호하는 것으로 추정된다"고 덧붙였다.
그는 또 "동반자살을 위해 강원도를 찾는 외지인들이 늘어날수록 이미지는 실추되고 숙박업소 등이 입는 타격이 크기 때문에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대책을 세워야 한다"고 말했다.
◇막을 수는 없나 = 동반자살에 대해 전문가들은 불안하고 나약한 심리에서 비롯된 극단적인 행동의 결과인 만큼 어릴 때부터 체계화된 자살예방 교육을 정규 교육과정에 포함하는 등 체계적인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.
생사학(生死學) 전문가인 오진탁 한림대 철학과 교수는 "동반자살은 인간과 생명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이 부족한 철학의 부재 탓"이라고 진단한 뒤 "정신의학이나 심리 상담만으로는 이 같은 병폐를 완치할 수 없고 초등학교 때부터 정규교육 과정에 자살예방 분야를 포함시키는 등 사회적인 노력이 필요하다"고 주장했다.
이인혜 강원대 심리학과 교수는 "청장년의 자살은 의지나 시도에 비춰 실행률이 낮은 것이 일반적이다"며 "그러나 동반자살은 군중심리와 같아서 단순 충동을 실행으로 옮기는 확률이 높아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된다"고 지적했다.
소설가 이외수(63) 씨는 동반자살 풍조에 대해 "극단적인 외로움의 표현"이라고 설명하면서 "외로운 나머지 생판 모르는 사람들끼리'같이 죽자'는 동맹을 급조하지만 결과는 더 초라하고 쓸쓸할 뿐"이라고 충고했다.